고려대의료원 불자회, 국경을 넘은 사랑과 자비의 인술

스리랑카 근로자들 찾아 몸과 마음의 상처 돌봐

23일 일요일 오전 안산시 반월공단 내 한 운동장, 우리나라 추석과 같은 스리랑카 최대 명절을 축하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스리랑카 근로자 약 5,000여명이 북적인다. 이곳 한켠에 차려진 야외진료소에도 진료를 받기 위해 늘어선 근로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황량한 운동장에 병원을 연상시킬 만큼의 대규모 야외진료소를 차리고 의료봉사활동에 나선 곳은 바로 고려대의료원 불교 동호회인 ‘불자회(회장 김우주․구로병원 감염내과)’ 의료봉사단이다

휴일도 잊은 채 의료봉사에 나선 50여명의 고려대의료원 불자회 봉사단은 내과, 외과, 안과, 피부과, 산업의학과, 정신과 등 각 전문분야별로 파트를 구성, 숨돌릴 틈도 없이 진료를 이어가며 수많은 스리랑카 근로자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꼼꼼히 살폈다.

봉사단장인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이들 대부분이 현장근로자로 경제적 상황이 열악하고 말도 통하지 않아 평소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낸다”면서, “낯선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의 활동이 조그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 근로자는 "크고 작은 부상과 상처에도 그냥 참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게 우리의 현실인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 진료해주고 약을 주니 더없이 고마울 따름이다"라며 감사함을 전했다.

몰려든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별다른 혼잡없이 진료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10명의 전문의를 비롯해 간호사, 약사를 비롯해 행정직까지 참가한 의료봉사단 모두 의료와 봉사란 두 분야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묻지마 경력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였기 때문. 그야말로 각 전문분야에서 막강 맨파워를 자랑하는 이들은 진료소 곳곳에 위치하며 모든 접수, 검사, 진료, 투약까지 모든 진료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 일등공신들이다.

이날 또하나의 숨은 일꾼들은 바로 어린이 봉사단, 대부분이 불자회 소속 자녀들인 이들은 진료소를 종횡무진 누비며 어른들과 보조를 맞췄다. 약제팀의 윤지(13)와 율희(9) 두 자매는 고사리같은 두 손으로 엄마가 조제해 준 약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정리하고, 담고, 환자에게 전했다. 약제팀의 보배와 같은 이들의 활약은 조제에서 투약이 신속히 이루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진료안내의 지선이(10)와 재형(9)이는 한손에는 챠트를, 또 다른 한손에는 환자손을 잡고 진료소를 종횡무진 누비며 환자를 안내했다. 이 둘에겐 더 이상 낯선 이들에 대한 긴장감이나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어린이 봉사단들이 봉사하는 내내 보여준 어린이답지 않은 의젓함과 순발력, 야무진 모습들은 어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 이는 이미 수차례 아빠, 엄마와 함께 의료봉사를 함께하며 몸과 마음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아직 봉사라는 단어가 낯설긴 하지만 이 나눔 자체가 마냥 즐거운 아이들. 지금 이들에게 봉사는 분명 그 어느 놀이동산, 장난감보다 더없는 즐거움과 생기를 주는 보물이 되고 있었다.

의료봉사단의 준비도 완벽했고, 스리랑카 근로자들의 의료수요도 높았지만 이날 최대의 복병이였던 얄궂은 날씨앞에선 도리가 없었다. 봉사단은 오전부터 계속된 돌풍과 급기야 오후에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진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계속되는 악천후속에서도 엠블런스와 이동검진차로 이동해 진료를 강행했지만 계속되는 폭우로 인해 결국 진료를 중단해야만 했다, 이때까지 진료한 총 환자는 100여명, 무엇보다 가장 아쉬워한 사람들은 봉사단원들. 불자회 총무를 맡고 있는 52병동 황경임 간호사는 “이 행사를 거의 한달동안 준비했는데, 진료중단을 결정할 땐 다리에 힘이 풀리더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번 의료봉사를 진두지휘한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무엇보다 이렇게 나눔의 실천에 동참해준 불자회 회원들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안암, 구로, 안산병원과 불교단체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감사함을 전하고, “오늘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다. 내년, 내후년에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때까지 이 인술을 통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로병원 정신과 김승현 교수도 “지난해 스리랑카 쓰나미 의료봉사 이후 1년만에 스리랑카 친구들을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워낙 낙천적인 국민성으로 인해 타지에서 겪고 있는 정신적인 어려움을 토로하진 않지만 그래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은 감추지만은 못하더라. 이들 모두가 이곳을 고향처럼 느낄 수 있도록 우리나라 국민들이 조그마한 관심과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고려대의료원 불자회는 지난해 창립이후부터 왕성한 종교활동과 함께 지금까지 몽골의료봉사와 정기적인 안산 법당 외국인 무료진료를 비롯해 국내 사찰 순회 의료봉사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1년동안 약 5,000여명의 환자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며 고려대의료원의 인술사절단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올해 7월에는 일반인들도 참가할 수 있는 대규모 템플스테이와 의료봉사를 계획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