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의사

김우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전공을 고민하던 신참 의사는 어느새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이 되었고, 환자를 넘어 나라까지 돌볼 만큼 진화했다. 그는 스스로도 모르게 발전해 왔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안다. 김우주 교수의 진화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 고대투데이 인터뷰 발췌 -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의 활약상을 담은 특집 인터뷰가 고려대학교 매거진 ‘고대투데이’ 최신호(57호)에 게재됐다.

김우주 교수는 고대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이슈인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한 감염성 질병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고, “바이러스 성향을 제대로 알고 우리의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야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나 사스 같은 감염성 질병은 공포의 대상이지만 제대로 적시에 대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치된다”며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를 역설했다.

특히, 김우주 교수는 “언제나 가장 힘든 건 지금 이 순간이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현재가 흘러간 과거가 아름다워진다. 또, 다가올 현재인 미래도 달라진다”면서,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국민의 건강과 국가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 스스로도 진화해 바이러스의 진화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고대투데이 인터뷰 전문.

올 3월, 서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프리카를 넘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에볼라 바이러스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1976년이다. 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 강 주변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고열에 시달리다 피를 토하며 숨을 거뒀다.

전혀 알려진 바 없는 바이러스가 70% 이상의 치사율로 400명 이상을 희생시키자 세계는 긴장했다. 하지만 에볼라 바이러스는 별다른 이유 없이 사라졌고, 가끔씩 출현해서 인명을 앗아갔지만 세계를 경악시킬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에볼라 바이러스는 서부 아프리카 4개국(기니,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시에라리온)에서 2000명이 넘는 환자를 감염시켜 1000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으며 지금까지와 다른 포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는 쉬지 않고 물물교역을 진행하고 있고, 아프리카와 같은 오지를 탐험하는 항공 여행도 흔해졌다. 국경은 사라지고, 열대우림은 언제든 미지의 바이러스들로 가득 찬 판도라의 상자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언제든 전혀 알려진 바 없는 바이러스가 의외의 장소에서 상상 밖의 사건을 일으키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대한 두려움은 영화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과거에는 지구의 안위를 위협하는 단골 메뉴가 핵전쟁이었는데, 요즘은 인류 멸망을 좌지우지하는 악역을 바이러스가 주로 맡고 있다. 현실에선 에볼라 바이러스, 조류 인플루엔자, 사스 등이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했다.

이렇게 새로운 감염성 질병이 등장하면 언제나 언론은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의 감염내과 전문의 김우주 교수를 가장 먼저 찾는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올해에도 김우주 교수는 언론 인터뷰의 단골이 됐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를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공기가 아닌 접촉을 통해 전염되며, 잠복기에는 전파되지 않기 때문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김우주 교수는 함부로 마음을 놓아서도 안 된다고 경고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손자병법》에선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라고 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크게 낭패 당하진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이러스의 성향을 제대로 알고(지피), 우리의 상황을 정확히 분석해야(지기)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감염성 질병에 대해 지피지기를 가장 잘하는 전문가가 되었지만 김우주 교수가 처음부터 감염내과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프로이드나 칼 융의 책을 읽으며 사춘기를 보낼 정도로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정신과를 지망하려 했지만 인생은 그의 뜻과 달리 흘러갔다. 그는 양구 2사단 신병교육대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들로 구성된 군인들이 아픈 이유의 대부분은 바이러스나 세균 때문이다. 진피와 피하조직에 나타나는 급성세균감염증인 봉와직염을 대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전방의 병영 환경이 지금보다 열악한 1980년대의 특성 때문에 수십 명이 한꺼번에 감기 등 감염성 질병에 걸리는 일도 있었다. 복무 2년차에 수도통합병원 호흡기 전염병과 과장이 되면서 그는 감염성 질병과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됐다. “호흡기전염병과를 맡게 된 이유요? 마침 그 자리가 비어 있었습니다. 군대 특성이죠(웃음). 그렇게 우연의 연속 끝에 감염과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수도통합병원에서 수막구균성뇌수막염, 패혈증 등 심각한 감염병과 계속 마주치면서 그는 감염내과의 ‘드라마틱한’ 매력에 빠지게 됐다. 혈압이나 당뇨 등 대부분의 내과 질환은 완치하기 어렵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에볼라 바이러스나 사스 같은 감염성 질병은 공포의 대상이지만 제대로 적시에 대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치된다. 감염성 질병 가운데 사망과 완치의 극단적인 이분법을 벗어난 건 에이즈뿐이다. “하지만 이런 매력 때문에 감염내과 지원자가 적기도 합니다.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진료과가 아니기 때문에 돈이 안 되거든요.” 감염내과 선택의 결정적인 계기는 은사인 고 박승철 교수의 권유였다. 수도통합병원 자문교수로 위촉하기 위해 박 교수를 만난 김우주 군의관은 간질환 전문의가 될까 고민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전염병의 1세대 권위자였던 박 교수는 “간염이면 감염이지.”라고 재치 있게 감염내과를 권유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우주 교수는 미국에서 연수하던 2년을 제외한 평생을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감염내과 전문의로 25년을 보내왔다. 그의 선택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감염내과 전문의가 20여 명뿐이었다.(그 수는 지금도 200명을 조금 넘어섰을 뿐이다.)

1997년 5월. 홍콩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조류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H5N1바이러스가 수인공통으로 변화해 3세 소아를 감염시킨 것이다. 18명이 감염되어 6명이 사망했다.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대응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민간 전문가를 활용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1999년 말 김우주 교수도 국립보건원 호흡기바이러스과장을 겸직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받았다.

“일주일에 세 번씩 녹번동으로 가게 됐습니다. 두 군데서 일하니까 돈도 두 배로 벌어서 좋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순수한 무급 봉사였습니다. 진료, 교육, 연구 등 본연의 3가지 업무 외에 사회적 공헌을 시작한 거죠.”

2000년에는 홍역이 유행해서 어린이 2만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김우주 교수는 야생홍역바이러스를 사람에게서 분리해서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했다. 그 결과 2000년 우리나라에서 유행한 홍역 바이러스가 1997년에 중국 산둥성에서 유행하던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01년 백신을 수급해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500만명의 일제 접종을 실시했다. 이때부터 환자 개인을 넘어 국가와 국민이 그의 환자가 됐다. 김우주 교수는 보건복지부와 국립보건원의 자문 요청에 응했고, 국가 단위의 감염성 질병 감시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보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조류독감이나 사스 등 감염성 질병이 나타나면 정부의 올바른 대응과 국민들의 적절한 대처를 유도하기 위해 언론 인터뷰에 나섰다. 하지만 계속 대재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그의 모습을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로 받아들이는 이가 나타났다. 정부 차원에서 백신을 개발하고 항바이러스제를 대대적으로 비축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도 일어났다. 2008년 그는 의구심을 지닌 이들의 협박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2009년 5월 신종 인플루엔자가 국내에 유입되면서 그의 경고가 현실화됐다. 김우주 교수는 즉시 백신을 개발하고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 만 명을 접종해서 유행을 발 빠르게 종식시켰다. 

“당시를 회상하면 보람을 느끼지만 이제는 감염성 질병 관리 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발생한 질병에 대응하는 게 아니라 미리 대비하는 시스템으로 가야죠. 그게 선진국으로 가는 조건입니다.”

2010년 11월 김우주 교수는 ‘신종 인플루엔자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연구 개발 역량 강화 및 범 부처 협력 체계 구축’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발족한 신종 인플루엔자 범 부처 사업단의 단장을 맡게 됐다.

“정부에 자문하고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를 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다행히 지금까진 큰 실수 없이 바른 길을 걸어왔네요.”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하자 김우주 교수는 의료협회의 신종 감염병 대응 TFT의 팀장도 겸했다. 2009년부터는 바이러스에 쉽게 오염되는 달걀 대신 MDCK세포에 배양하는 공법도 개발 중이다. 허가가 나면 단기간에 빠르고 안전하게 백신을 대량 생산하는 게 가능해진다. 많은 일을 하려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언제나 가장 힘든 건 지금 이 순간입니다. 하지만 지금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현재가 흘러간 과거가 아름다워집니다. 또, 다가올 현재인 미래도 달라집니다. 감염내과를 선택하고, 국민의 건강과 국가의 안전을 챙기게 되리라곤 스스로도 몰랐습니다. 바이러스도 생물이고, 김우주도 생물입니다.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다 보니 바이러스들이 진화하듯 김우주도 진화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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