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현미경 속 세상, 아름다운 과학으로 예술표현

병리과 김한겸 교수, 바이오현미경 사진전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 수상

‘흰 수염 할아버지’란 작품으로 제9회 바이오현미경 사진전 대상 영예

고려대 구로병원 병리과 김한겸 교수가 최근 열린 ‘제9회 바이오현미경사진전’에서 ‘흰 수염 할아버지’란 작품으로 대상인 교육과학기술부장관상을 수상했다.

현미경 속 인체의 이미지를 재치있는 해석으로 풀어낸 김한겸 교수는 일반부 대상인 '흰 수염 할아버지'와 '불나방', '콜로세움' 등 입선작 포함 총 세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 김 교수는 12월 27일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해 이시종 충청북도 도지사로부터 대상을 받았다.

총 278편이 경합을 벌인 이번 사진전은 아름다운 현미경 사진을 통하여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 제고를 위해 충청북도, 오송바이오진흥재단, 충북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국가지정의학연구정보센터 주관, 동아사이언스가 후원했다.

<대상(과학기술부장관상), 김한겸 作>‘흰 수염 할아버지’ / 광학현미경 100배

흰 수염 할아버지가 시원한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신 걸까? 얼굴이 불그스레해져서는 입을 꾹 다문 채 속상한 듯 빈 술잔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잔 더 자시고 싶은 모양이다. 혹시 어렸을 적 첫사랑이었던 옆집 아가씨가 그리운 것은 아닐까? 지금은 할머니일 텐데 어디에서 무얼 하고 계실까. 알고 봤더니 인체의 연부조직을 확대해 찍은 모습이다. 이 작품은 수염뿐 아니라 눈과 눈썹, 코와 머리카락까지 실제 사람을 연상시키는 등 예술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사람 무릎 관절에 들어있는 뼈, 지방 등 부드러운 조직들이 이루는 모습을 100배 확대한 것이다. 사진에서 붉게 염색된 부분은 대부분 ‘콜라겐 섬유’고, 눈처럼 보이는 빨간 부분은 부러진 뼛조각이다. 지방조직은 마치 흰 수염 같다.

연부조직(soft tissue)이란 우리 몸에서 뼈처럼 단단하지 않은 부드러운 조직을 말한다. 주로 근육, 인대, 지방, 섬유조직, 활막조직, 신경혈관 등이다. 연부조직을 현미경으로 보면 콜라겐 섬유, 낭성구조, 골파편, 지방조직 등이 보인다. 골파편은 눈처럼 보이고, 지방조직은 마치 흰 수염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들이 어우러지더니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흰 수염 신선이 나타났다.

연부조직은 딱딱한 뼈에 우리 몸의 외형과 속을 만든다. 연부 조직은 말 그대로 부드럽지만 늘 바쁘게 활동한다. 온 몸에 피를 보내고, 근육을 이용해 운동을 하고, 신경을 이용해 온 몸에서 느끼는 감각을 뇌로 보낸다. 연부 조직은 때로는 지방이 너무 많이 끼였다고 비난을 받지만 사실 피부 밑에 지방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리 따뜻한 옷을 입어도 추위에 벌벌 떨 것이다. 피부가 고운 것도, 얼굴이 아름다운 것도 다 연부 조직이 좌우한다.

<입선, 김한겸 作> : 불나방 / 광학현미경 200배

자신이 타서 죽을 줄도 모르고 불에 이끌려 날아드는 불나방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아련하다. 자신도 왜 그러는지 모르면서 본능에 이끌려 파멸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저 매혹적인 불이 사실은 자기를 집어삼키는 화마라는 것을 나방은 알고 있을까?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불에 끌려가며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있을까, 아니면 비록 찰나의 순간이라도 아름다움의 절정에 자신을 내맡기며 처연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바늘처럼 가느다란 요산염의 결정체를 편광필터를 통해 광학현미경으로 관찰하였더니 마치 나방들이 불을 찾아 날아들면서 날갯짓을 빠르게 반복하는 모양이 보였다. 인체의 통풍은 혈액 내에 요산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요산염의 결정체가 연골이나 힘줄 등의 연부 조직에 쌓이는 질병이다. 결정체로 인하여 관절에 통증을 동반한 염증이 올 뿐 아니라 관절의 변형과 불구가 일어난다. 편광필터를 통해 관찰하면 반짝거리는 바늘집단 모양의 결정체를 볼 수 있다.

요즘 20, 30대의 젊은 통풍 환자가 늘어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식생활의 서구화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비만과 각종 성인병도 통풍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통풍과 음식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속설이 있는데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다음과 같다. 소의 뇌, 콩팥, 고기국물, 정어리, 멸치, 동물의 간을 먹으면 혈중 요산 수치가 높아질 수 있다. 이런 음식은 피하는 게 좋다. 커피나 차는 마셔도 되지만 술은 피하는 게 좋다. 술을 많이 마시면 요산 수치가 올라간다. 매일 최소 10∼12잔의 물을 마시면 요산 결정이 몸 밖으로 배출된다.

<입선, 김한겸 作> ‘콜로세움’/ 광학현미경 200배

로마 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면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치열한 원형경기장, 즉 콜로세움이 자주 등장한다. 로마에 콜로세움만 있었던 것은 아닐 텐데 이곳이 로마시대에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기 때문일까.

사진을 보면 여성의 자궁경부에 있는 분비샘에서 나온 점액들이 서로 연결되어 층을 형성하고 있다. 마치 로마 콜로세움의 관람석을 보는 것 같다. 방사상(放射狀)으로 형성된 줄은 조직을 만드는 과정 중에 점액이 접힌 것으로 마치 운동장의 통로 같다. 중앙에 있는 원형경기장에서는 검투사들이 결투를 하는 듯 선혈이 낭자하다.

여성 자궁경부의 원주세포에서 분비되는 점액은 세포마다 따로 분비되는 것이 아니고 자극을 받으면 동시다발로 점액을 분비한다. 분비된 점액은 서로 융합하여 층을 이루게 된다. 방사상으로 형성된 선들은 조직을 만드는 과정에 점액이 접혀서 형성되었다. 주위에 점액을 분비하지 않은 정상 점액선이 있다.

암 중에서 가장 인류가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 자궁경부암이다. 자궁경부암은 인유두종바이러스에 감염돼 많이 생기는데 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백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이 백신을 맞아두면 자궁경부암의 공포에서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다. 인류의 암에 대한 도전이 화려한 결실을 맺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