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에 잠 못 드는 당신, 하지불안증후군 의심!

외국 동화 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옛날에 한 왕국에서 왕자의 배필을 찾기 위해 ‘진정한 공주를 가려내는 테스트’를 했다. 겹겹이 쌓은 이불 맨 아래 작은 콩알 하나를 넣어두었는데 진짜 공주는 그 콩알이 배겨서 밤새 잠을 설쳤다고 한다. 작은 변화도 알아차릴 만큼 치밀한 교육을 받았다는 진짜 공주에 관한 얘기였는데 얼마나 예민하면 그 정도에 잠을 이루지 못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치료를 받은 사람이 날로 늘고 있다고 한다. 수면장애로 병원을 찾은 인구가 5년 새 2배 가량 증가했다는 통계에 ‘수면장애’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신경과 전문의로서 현황에 공감하고 책임도 느낀다.

얼마 전 40대 후반의 여성이 진료실을 찾았다. 한 눈에 봐도 푸석한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났다. 몇 달 전부터 밤마다 다리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편한 느낌이 들어 잠을 제대로 못 잔다고 한다. 허리 디스크인줄 알고 신경외과를 찾아보기도 하고, 중년에 많이 발생한다는 정맥류 때문인가 싶어 외과 병원도 다녀왔다고 털어놓았다. 자가 진단으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주변에 증상을 호소했더니 신경과로 가보라고 해서 찾아 왔다고, 도대체 뭐가 문제냐? 하는 표정이 매우 지쳐 보였다. 잠 들기 전에 증상이 심해지고, 움직이면 일시적으로 호전되어진다는 말에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하지불안증후군’을 의심했고,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하지불안증후군에 흔히 동반되는 ‘주기적사지움직임증’을 확인했다.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의 부족으로 드러나 도파민 작용제를 처방했고 눈에 띄는 증상 완화를 확인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하지불안증후군의 유병률이 국내 성인의 7.5%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은 환자마다 정도가 다르지만 격심한 통증이 동반되거나 증상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아, 병이라 여기지도 않고 ‘금방 괜찮아지겠지’ 싶은 마음에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애꿎게 예민한 신경만 탓하기 일쑤지만, 진단만 정확하면 의외로 치료는 간단하다.

하지불안증후군은 철분결핍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임산부에게 일시적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철분제를 보충해 주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철분은 도파민 전구체인 레보도파가 도파민으로 변화시키는 효소 생성을 돕는데 철분이 부족한 경우 체내 도파민 생성에 영향을 미쳐 다리 저림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체내 도파민 분비가 부족한 경우 레보도파를 직접 보충해 체내에서 도파민으로 변환, 그 역할을 하게 하는 치료법도 있지만, 젊은 나이에는 사용이 제한적이며 장기 치료에 안전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반해 도파민 작용제는 시냅스후도파민수용체를 직접 자극하는 약제로 도파민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하지불안증후군 치료에 많이 쓰인다. 최근에는 하지불안증후군 치료에 있어 단기는 물론 6개월 이상 장기 사용에도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 받은 패취형 도파민 작용제도 소개되었다.

하지불안증후군 치료에 있어 아쉬운 부분은 ‘증상이 완화되면 임의로 치료를 중단’ 하는 환자가 많다는 점이다. 게다가 임의로 약물 용량을 조절하기도 해 우려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불안증후군을 오래 앓은 환자는 심할 경우 움직임이 활발한 낮 시간에도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환자들에게는 약물이 24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체내에 전달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지불안증후군의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민함으로 인해 진짜 공주로 밝혀진 동화 속 주인공은 왕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스트레스와 피로가 넘치는 시대에 부족한 잠은 다양한 후유증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하지불안증후군으로 인한 수면장애는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 의지와 효과 좋은 약물 처방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도움말┃신경과 정기영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