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종류와 ‘잠자는 중환자실의 공주’

TV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기억 상실에 걸린 주인공,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님 이야기가 자주 이야기 되고 있다. 기억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전이나 교과서를 찾아보면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혹은 ‘한 개체가 정보나 경험을 저장, 보관, 재생하는 능력’ 이라는 알듯 하면서도 모르는 낱말로 표시되어 있다.

전공의 시절에 ‘잠자는 중환자실의 공주’ 라는 별명을 가진 한 환자가 있었다. 갓 결혼한 이십대 후반 여자 환자로 바이러스성 뇌염에 걸려 경련과 혼수 상태로 약 한달 정도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미모와 깊은 잠을 자는 듯한 모습 때문에 그런 별칭을 얻게 되었다. 남편의 지극 정성 때문인지 환자는 점차 의식이 회복되어 눈도 뜨고, 말도 몇 마디씩 하게 되었는데, 남편을 처음 보고 한 말이 “누구세요?” 였다. 환자는 뇌염으로 인해서 측두엽 이라는 기억에 가장 중요한 구조물이 손상되어 남편을 기억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기억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 이야기 할 수 있다. 하나는 서술 기억이고 하나는 체계 기억이다. 서술 기억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지난 주말에 호수 공원에 가서 가족과 함께 자전거를 탔다’ 라고 어떠한 사실이나 일화를 말로 풀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체계 기억은 자전거나 스키를 타는 방법과 같이 처음에는 순서를 외우면서 배웠지만 이제는 우리 몸이 알아서 행동해주는 기술적인 것을 말한다.

다시 중환자실의 공주 이야기로 돌아가자. 퇴원 후 환자는 남편과 함께 스키장을 다녀 왔는데, 남편이 과거에 환자에게 스키타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처음 스키를 타는데도 잘 타는 것이 신기하다고 이야기 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두 종류의 기억은 각각 관련된 뇌의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뇌염으로 측두엽에 손상이 발생한 이 환자는 스키를 처음 가르쳐 준 사람이 남편인지는 모르지만 스키는 잘 탈 수 있었던 것이다.

뇌에 갑작스러운 병이 생겨서 기억 장애가 발생한 경우도 있지만, 흔한 기억 장애를 일으키는 병은 일반적으로 ‘치매’ 라고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이다. 이 병에서도 주로 손상이 오는 기억은 ‘서술 기억’ 이다.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현재부터 시작해서 과거로 점점 지워가는 특징을 보이게 되고, 따라서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데 어려움을 보인다. 치매에 걸린 두 노부부가 서로 같은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심한 경우는 남은 기억이 유년기 시절만 남아 있어서 본인의 자녀를 부모로 잘못 인식하기도 한다.

오늘은 진료 받으러 오신 70대 여자 환자분에게 “기억이 무엇이에요?” 라고 물어보았다. 그 할머님께서 “지나간 세월이지. 기쁘고, 슬프고” 우리 인간에게 기억이란 단어는 추억이라는 단어가 되고, 감정이 같이 묻어 있는 단어인 것 같다.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을 잘 간직하고 또 만들어 가야 할 것 같다.

 글 | 신경과 고성범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