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종 플루'된 신종 플루, 유행은 끝났다

신종 플루(인플루엔자 A/H1N1)의 2차 유행이 끝났다. 질병관리본부 양병국 전염병대응센터장은 9일 "1월 마지막주 독감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발생이 뚝 떨어져 '대유행 이후 유행(Post- Pandemic Epidemic)'이 사실상 끝났다"고 선언했다. 전염병 교과서에는 대유행 이후 몇 차례 2차 유행이 온다고 돼 있는데 큰 고비를 넘긴 것이다. 본지의학전문 객원기자로 위촉된 고려대 구로병원 김우주(감염내과) 교수가 신종 플루의 변화를 취재·분석했다.

올해 겨울 독감(인플루엔자) 환자가 평소보다 많이 발생하고 연이어 사망자가 나오면서 2009년 과 같은 신종 플루 대유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종 플루는 계절독감의 하나로 전락했으며, 더이상 신종 플루라는 두려운 이름으로 불려서는 안된다. 1959년 큰 피해를 냈던 사라와 같은 초특급 태풍이 아닌 매년 늦여름이면 찾아오는 그저 그런 중소형 태풍의 하나가 된 셈이다.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독감유사환자분율(ILI)이 24명에 달해 신종 플루 위기감이 고조됐다. 평상시 계절독감이 유행할 때 ILI가 최대 10명 이하인 점에 비춰 상대적으로 독감 환자가 증가한 것이다. 마침 신종 플루 사망자가 잇따르면서 불안감이 증폭됐다. 그러나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면서 바이러스 전파 속도가 줄었고, 1월 마지막 주 ILI가 7.2명으로 급감하면서 신종 플루 대유행의 우려는 사라졌다. 이번 겨울 신종 플루 사망자는 21명. 2009년 대유행때 확진환자 76만 명, 사망자 270명(치사율 0.035%)에 비하면 파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번 겨울 유행 수준은 평상시 계절독감의 규모가 다소 커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유행은 2009년 대유행때와 많이 다르다. 대유행 초기에는 바이러스 정체를 잘 몰랐고, 환자 발생이 폭발적이었고, 치사율도 높았다. 설상가상으로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가 크게 부족했고, 백신 공급이 늦어 공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겨울 신종 플루 환자의 대부분은 경증에다 치사율이 매우 낮았다. 또 정부가 1300만 명분의 항바이러스제를 충분히 비축했고 예방백신도 준비했다. 올해 1월 초 보건당국은 항바이러스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완화해 의사 판단에 따라 고위험군 환자가 아니더라도 보험을 인정하도록 해 조기 투약을 도왔다. 특히 국민의 약 3분의 1에 해당되는 1600여만 명이 독감백신을 사전에 접종해 집단면역 수준이 높아져 유행 규모와 사망자 수가 커질 수 없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국민이 신종 플루 대유행을 경험하면서 손씻기 등 위생관념이 높아진 점이다.

이제 신종 플루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보다 과도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신종 플루는 신종 인플루엔자의 준말이다. 2009년 4월 북미에서 처음 출현했을 때 일반독감 바이러스와 항원 특성이 상당히 달라 대부분의 사람이 면역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쉽게 감염되고 빠르게 전파됐다. 당시는 신종 플루로 불릴 만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나면서 백신을 맞거나 병을 이겨냄으로써 많은 사람이 면역을 획득했기 때문에 더이상 새로운 바이러스라고 할 수 없는 '구종(舊種) 플루'가 됐다. 이제 신종 플루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2009년 대유행 인플루엔자 H1N1'으로 기록될 것이다. 신종 플루라는 용어는 앞으로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현 했을 때를 위해 접어둬야 한다.

◆ 중앙일보 2월 10일자 게재

 글 | 김우주 고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 소개

바이러스와 감염 분야 전문가. 1983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87년 내과전문의를 취득했다. 현재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관리실장을 맡고 있다. 2009~2010년 신종 플루 대유행 때 환자를 진료하며 정책 자문, 언론 기고 등으로 크게 활약했다. 대한감염학회 부회장을 지냈고 신종 플루 범부처사업단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