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갖가지 신경계 질환

뜨거운 물건을 손으로 만질 때 ‘뜨겁다’는 것을 느끼기 전에 얼른 손부터 뗄 수 있는 것은 손끝에 있는 신경 때문이다. 자율신경계는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신체가 처해진 상황에 따라서 평생 동안 알아서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필요에 따라 심장 맥박수를 증가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땀도 나게 해준다.

이처럼 신경은 몸을 움직이고 감각을 느끼며, 몸의 평형을 유지시켜주는 등 매우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기억, 사고, 판단, 언어 등과 같은 고차원적인 기능도 담당한다. 신경은 크게 중추 신경과 말초 신경으로 구분되며 머리뼈와 척추 뼈 안에 각각 들어있는 뇌와 척수를 중추 신경,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분포하여 있는 신경을 말초신경 이라고 한다.

이런 신경에 이상이 생겨 기능 이상을 초래하는 것을 신경계 질환이라고 하는데, 뇌졸중, 뇌종양, 파킨슨병, 간질, 편두통, 수면 질환, 치매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신경계 질환은 원인 질환에 따라 증상은 비슷해도 발병 형태가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일례로 똑같은 마비가 발생해도 뇌졸중의 경우 갑작스럽게 발생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지만, 뇌종양의 경우 서서히 진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뇌졸중의 경우에는 초기에 증상이 악화되고 점차 시간이 가면서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뇌종양의 경우 시간이 갈수록 기존 증상이 악화되면서 새로운 증상이 동반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알쯔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의 경우에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천천히 진행되어 가는 특징을 보인다.

뇌졸중이나 퇴행성 신경질환과 같은 기능 상실이 주된 특징인 병이 있는 반면, 신경 조직의 흥분성이 증가되어 돌발적으로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질환도 있는데, 대표적인 병이 간질, 편두통, 수면질환이다. 이와 같은 질환들은 갑작스럽게 쏟아졌다가 그치는 소나기처럼, 아무런 이상 없이 지내다가 돌발적으로 증상이 나타났다가 다시 정상 상태로 회복되는 특징을 보인다. 간질은 최근 뇌전증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뇌에 비정상적인 전기 현상이 발생하여 경련을 일으키는 것으로 경련이 발생하지 않을 때는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편두통이나 수면질환의 경우도 비슷한 경과를 보인다.

같은 병이라도 병의 발생 부위에 따라 이상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뇌졸중이 왼쪽 대뇌에 발생하면 언어 기능의 이상이 잘 나타나지만, 오른쪽 대뇌에 발생하면 무시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다. 무시증후군은 병이 발생한 반대편에서 오는 자극을 감지하지 못하고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데, 심한 경우에는 왼쪽 팔에 심한 마비가 있는데도 무관심하거나 본인이 마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도 하며 때에 따라서는 왼쪽 팔이 자신의 팔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신경계 질환은 종류 및 발생 부위에 따라서 증상은 비슷한듯 보여도 각각 특징적인 발병 형태나 경과를 보이기 때문에 추적관찰을 통한 정확한 원인 분석과 이에 따른 치료가 필요하다. 마비 증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뇌졸중이라고 성급히 판단한다 거나, 일시적으로 떨림, 경직 등의 파킨슨병 관련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 정확히 어떤 신경계 질환에 이상이 있는지 찾아내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현명하다 하겠다.

 글 | 신경과 고성범 교수